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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노동 법령 이야기

근로기준법의 역사|제정부터 2026년까지의 변화

by livewiser 2025.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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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기준법의 역사

 

 

 

 

최근 정부와 국회에서는 근로기준법을 비롯한 여러 노동 관련 법률 개정이 활발히 논의되고 있습니다. ‘근로자의 날’이 ‘노동절’로 바뀌고 주4일제 혹은 주4.5일제의 도입이 추진되는가 하면 그동안 논란이 많았던  5인 미만 사업장의 근로기준법 예외 적용이 철폐될 예정입니다. 또한 플랫폼 노동자, 단시간·초단시간 근로자에 대한 보호 강화, 연차휴가 제도 확대, 산업안전 규정 강화, 정년 연장 논의 등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변화의 흐름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지금, 우리는 다시금 ‘근로기준법이 왜 만들어졌는가’ 그리고 ‘그 법이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는가’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근로기준법은 단순한 법 조항의 집합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하는 삶을 지탱해 온 사회적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이 글에서는 특히 최근 가장 큰 관심을 모으는 근로자의 날 명칭 변화와 주4.5일제 도입, 5인 미만 사업장 적용 확대를 중심으로 근로기준법의 역사와 변화의 의미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맞이할 노동 환경의 방향을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리의 일터가 어떻게 진화해왔는지 그리고 어떤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지 차근히 짚어보겠습니다.

 

 

 

 

 

 

 

 

 

 

 

1. 근로기준법의 역사

 

 

1.1 1953 최초의 근로기준법 | 시대를 앞선 노동법의 탄생

 

 

근로기준법의 탄생, 혼란 속에서 피어난 ‘노동의 헌장’

 

우리의 일터를 지탱해온 근로기준법은 사실 전쟁의 한가운데에서 태어났습니다. 1952년, 6·25 전쟁으로 전국이 비상계엄 상태였던 시기에 부산조선방직 사태와 부산 부두파업이 잇달아 일어나면서 노동자 보호의 필요성이 사회적 과제로 떠올랐습니다. 그 결과 임시수도 부산에 머물던 정부는 1953년 5월 10일, 마침내 근로기준법을 제정하게 됩니다. 그보다 두 달 앞선 3월 8일에는 노동조합법, 노동쟁의조정법, 노동위원회법도 함께 제정되며 오늘날 우리 노동법 체계의 뼈대가 마련되었습니다.

당시의 근로기준법은 산업화가 막 시작되던 시기에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법의 초점은 제조업 공장에서 일하는 '생산직 근로자를 보호하는 것'에 맞춰져 있었고 농업이나 서비스업 등 다양한 직종의 현실은 아직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습니다. 또한 당시 한반도는 미군정의 영향을 강하게 받던 시기였기에 일본의 노동기준법 그리고 그 바탕이 된 맥아더 군정의 노동정책이 법 제정 과정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 결과 제정된 법은 당시 우리 경제 수준에 비해 다소 이상적인 기준을 담고 있었습니다. 근로시간, 휴일, 임금 보장 등 근로조건이 법으로는 명시되어 있었지만 현실과의 간극이 커서 제대로 지켜지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때 제정된 근로기준법은 '근로자는 기계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존중받아야 한다'는 노동의 기본 가치를 처음으로 법으로 명문화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노동사의 출발점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임시 수도 부산
1951년 임시 수도 부산에 마련된 정부

 

 

 

1953년 제정 근로기준법의 주요 내용

 

1953년 근로기준법은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다소 단순하지만,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법은 우선 15인 이상 사업장에만 전면 적용되었고 15세 미만 아동의 근로를 금지하면서도 ‘취직 인허증’을 가진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근로를 허용하기도 했습니다. 그 외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근로조건의 결정에 근로자와 사용자의 동등한 지위 인정
  • 성별, 국적, 신앙 등에 따른 차별 금지
  • 근로자의 자유의사에 반하는 강제근로의 금지
  • 최저임금제, 8시간/일 주48시간 근로제, 주60시간 연장 근로제
  • 13세 미만 근로자 금지, 여성과 18세 미만 금지 업종 지정
  • 작업장 및 시설의 위험방지 의무화
  • 근로자의 정기적 건강진단 의무화
  • 사용자의 재해 요양비 부담 의무화
  • 휴업수당
  • 장해보상

 

이처럼 초기 근로기준법은 지금처럼 복잡한 제도나 수당 체계는 없었지만 근로자의 기본권을 보호하고 최소한의 인간다운 노동 환경을 보장하려는 시대적 선언이었습니다. 전쟁 중에도 '일하는 사람의 권리'를 법으로 지키려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역사적 의미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1953년 제정 근로기준법 원문
1953년 제정 근로기준법 원문

 

 

 

1953년 제정된 근로 기준법 < 사료로 본 한국사

근대 신재호이홍구 곽금선, 김기성, 김명섭, 김명재, 김명환, 김상훈, 김소영, 김영진, 김헌주, 남기현, 류동연, 박순섭, 박주영, 박한민, 성주현, 송영화, 심철기, 양진아, 이성우, 이양희, 이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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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962 개정 근로기준법 | 영세 기업을 위한 예외 조항의 시작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잡은 군사정부는 윤보선 대통령의 사퇴로 제2공화국의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던 1962년 9월 25일, 대통령령을 통해 근로기준법 2차 개정을 시행했습니다. 이 개정은 최초 1953년에 제정된 근로기준법이 현실과 괴리가 있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문제를 개선하려는 의도로 진행되었으나 결과적으로는 노동자 보호 측면에서 상당한 후퇴를 가져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특히 기업의 고용인원 규모에 따라 법 적용 범위를 차별화한 점이 큰 특징입니다. 16인 이상 30인 미만의 중소규모 기업들에 대해서는 퇴직금 지급 의무, 월차 유급휴가, 여성 근로자의 시간외 근로 제한 등 근로자 보호의 핵심 조항들이 면제되면서 상대적으로 영세한 사업장에 법적 부담을 덜어주려는 조치가 이루어졌습니다.

이러한 조치는 영세기업들의 경영 부담 완화라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지만 반대로 노동자의 권익 보호가 축소되고 법의 보호망이 느슨해지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따라서 1962년 2차 개정은 당시 산업 환경과 경제 현실에 맞춘 법적 조정이었으나 노동자의 기본 권리를 지키기에는 부족했던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결국 이 시기의 개정은 우리 근로기준법 역사의 중요한 분기점 중 하나로, 노동자의 권익 보호와 기업의 현실적 부담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과제인지를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법 개정을 통해 이러한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5.16 군사 쿠데타
5.16 군사정변

 

 

 

 

 

 

 

 

 

1.3 전태일 열사 |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1960~70년대 한국 노동 현장은 근로기준법이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현장에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던 시기였습니다. 당시 법에는 일일 근로시간 8시간, 주별 근로시간 및 연장근로 한도, 휴일 규정이 명시되어 있었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많은 노동자들이 일주일에 하루도 쉬지 못하고 하루 14~15시간씩 장시간 노동을 강요당하는 일이 빈번했습니다. 특히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의 삶은 법적 보호와는 거리가 먼 처참한 수준이었습니다.

이런 열악한 근로 환경 속에서 전태일 열사는 근로기준법 준수와 노동자 권리 보장을 촉구하며 스스로 분신하는 극단적 선택을 하였습니다. 그의 죽음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법이 현실에서 무력화된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고 노동문제에 대해 사회 전반에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전태일 열사 (1948~1970)
 
노동자에서 노동 운동가로
전태일은 1948년 8월 26일, 대구의 어느 가난한 집안에 장남으로 태어났다. 6·25 전쟁 이후 가족과 함께 서울로 올라온 전태일은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하면서 생계를 위해 12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동대문 시장에서 잡일을 시작했다. 열일곱 살이 된 1965년, 아버지에게 배운 미싱 기술로 평화 시장 삼일사에 취직한 전태일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재봉사가 됐다. 임금도 하루 50원에서 한 달 3,000원으로 대폭 올랐다. 평화시장에서 일을 한 지 1년, 기술을 배우기 위해 주변을 볼 겨를도 없었던 그에게 어느 날부터 주변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평화시장의 어린 여공들. 그들이 열악한 노동 환경과 박봉, 질병에 시달리는 모습. 그것은 전태일이 겪었던 그리고 여전히 겪고 있는 고통이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전태일은 사회의 모순과 노동자들의 부조리한 현실에 눈을 뜨게 됐다.
근로기준법의 존재를 알게 된 전태일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근로기준법을 공부했다. 그러나 근로기준법을 공부할수록 현실과의 괴리만 느껴질 뿐이었다. 그는 동료들을 모아 ‘바보회’를 만들어 평화 시장의 노동 환경과 실태를 조사했다. 노동청에 근로 기준 개선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하고 박정희 대통령 앞으로 탄원서를 보내는 등 근로기준법이 현실에 적용될 수 있도록 노력했으나 모두 거절당하거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중간에 소거되기 일쑤였다.
 
근로기준법을 불태우다
1970년 11월 7일은 노동청이 법을 개정해주겠다고 약속한 날이었다. 하지만 노동청에서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그 다음 날인 8일 전태일은 노동 운동을 하는 동료들에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근로기준법 책을 화형하자”며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제안한다.
거사 당일인 11월 13일, 몸에 석유와 휘발유를 붓고 평화시장 앞길로 뛰쳐나온 전태일은 몸에 불을 붙인 채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를 혹사하지 말라!”고 외쳤다. 이내 쓰러진 그는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하고 같은 날 오후 10시 성모병원 응급실에서 “배고프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사망했다.
이후 어머니 이소선 여사는 청계피복노조를 결성해 아들의 뜻을 이어갔다. 청계피복노조는 1998년 서울의류노동조합과 합쳐져 해산할 때까지 대한민국 노동운동의 상징과도 같은 조직이었다. 이소선 여사는 2011년 9월 3일 별세하기 전까지 여러 노동운동 현장과 민주화 운동 현장에서 노동운동가들을 위해 애썼다.
죽음도 불사하며 노동운동에 모든 걸 던진 전태일. 그리고 못다 이룬 그의 뜻을 대신 이어간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의 삶은 오늘날까지 우리나라 노동운동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전태일 열사가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
 
 
존경하시는 대통령 각하
 
옥체 안녕하시옵니까? 저는 제품(의류) 계통에 종사하는 재단사입니다.
 
각하께선 저들의 생명의 원천이십니다. 혁명 후 오늘날까지 저들은 각하께서 이루신 모든 실제를 높이 존경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길이길이 존경할 겁니다. 삼선개헌에 관하여 저들이 알지 못하는 참으로 깊은 희생을 각하께선 마침내 행하심을 머리 숙여 은미합니다. 끝까지 인내와 현명하신 용기는 또 한 번 밝아오는 대한민국의 무거운 십자가를 국민들은 존경과 신뢰로 각하께 드릴 것입니다.
 
저는 서울특별시 성북구 쌍문동 208번지 2통 5반에 거주하는 22살 된 청년입니다. 직업은 의류계통의 재단사로서 5년의 경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의 직장은 시내 동대문구 평화시장으로써 의류전문 계통으로썬 동양 최대를 자랑하는 것으로 종업원은 2만여 명이 됩니다. 큰 맘모스 건물 4동에 분류되어 작업을 합니다. 그러나 기업주가 여러분인 것이 문제입니다만 한 공장에 평균 30여명은 됩니다. 근로기준법에 해당이 되는 기업체임을 잘 압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근로기준법의 혜택을 조금도 못 받으며 더구나 2만여 명을 넘는 종업원의 90% 이상이 평균 연령 18세의 여성입니다. 기준법이 없다고 하더라도 인간으로써 어떻게 여자에게 하루 15시간의 작업을 강요합니까? 미싱사의 노동이라면 모든 노동 중에서 제일 힘든(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노동으로 여성들은 견뎌내지 못합니다.
 
또한 2만여 명 중 40%를 차지하는 시다공들은 평균연령 15세의 어린이들로써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성장기에 있는 이들은 회복할 수 없는 결정적이고 치명적인 타격인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전부가 다 영세민의 자녀들로써 굶주림과 어려운 현실을 이기려고 하루에 90원 내지 100원의 급료를 받으며 하루 16시간의 작업을 합니다. 사회는 이 착하고 깨끗한 동심에게 너무나 모질고 메마른 면만을 보입니다. 저는 여기에서 각하께 간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 착하디 착하고 깨끗한 동심들을 좀 더 상하기 전에 보호하십시오. 근로기준법에선 동심들의 보호를 성문화하였지만 왜 지키지를 못합니까? 발전도상국에 있는 국가들의 공통된 형태이겠지만 이 동심들이 자라면 사회는 과연 어떻게 되겠습니까? 근로기준법이란 우리나라의 법인 것을 잘 압니다. 우리들의 현실에 적당하게 만든 것이 곧 우리 법입니다.
 
잘 맞지 않을 때에는 맞게 입히려고 노력을 하여야 옳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 기업주들은 어떠합니까? 마치 무슨 사치한 사치품인양, 종업원들에겐 가까이 하여서는 안 된다는 식입니다.
 
저는 피 끓는 청년으로써 이런 현실에 종사하는 재단사로써 도저히 참혹한 현실을 정신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저의 좁은 생각 끝에 이런 사실을 고치기 위하여 보호기관인 노동청과 시청 내에 있는 근로감독관을 찾아가 구두로써 감독을 요구했습니다. 노동청에서 실태조사도 왔었습니다만 아무런 대책이 없습니다. 1개월에 첫 주와 삼 주 2일을 쉽니다.
 
이런 휴식으로썬 아무리 강철같은 육체라도 곧 쇠퇴해 버립니다. 일반 공무원의 평균 근무시간 일주 45시간에 비해 15세의 어린 시다공들은 일주 98시간의 고된 작업에 시달립니다. 또한 평균 20세의 숙련 여공들은 6년 전후의 경력자로써 대부분이 햇빛을 보지 못한 안질과 신경통, 신경성 위장병 환자입니다. 호흡기관 장애로 또는 폐결핵으로 많은 숙련 여공들은 생활의 보람을 못 느끼는 것입니다. 응당 기준법에 의하여 기업주는 건강진단을 시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법을 기만합니다.
 
한 공장의 30여 명 직공 중에서 겨우 2명이나 3명 정도를 평화시장 주식회사가 지정하는 병원에서 형식상의 진단을 마칩니다. X레이 촬영 시에는 필림도 없는 촬영을 하며 아무런 사후 지시나 대책이 없습니다. 1인당 3백 원의 진단료를 기업주가 부담하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전부가 건강하기 때문입니까? 나라의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실태입니까?
 
하루 속히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약한 여공들을 보호하십시오. 최소한 당사들의 건강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정도로 만족할 순진한 동심들입니다. 각하께선 국부이십니다. 곧 저희들의 아버님이십니다. 소자된 도리로써 아픈 곳을 알려 드립니다. 소자의 아픈 곳을 고쳐 주십시오. 아픈 곳을 알리지도 않고 아버님을 원망한다면 도리에 틀린 일입니다.
 
저희들의 요구는
 
1일 15시간의 작업시간을 단축하십시오. 1일 10시간 - 12시간으로, 1개월 휴일 2일을 일요일마다 휴일로 쉬기를 희망합니다.
 
건강진단을 정확하게 하여 주십시오.
 
시다공의 수당 현 70원 내지 100원을 50% 이상 인상하십시오.
 
절대로 무리한 요구가 아님을 맹세합니다.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요구입니다.
 
기업주 측에서도 충분히 지킬 수 있는 사항입니다.
 
「존경하는 대통령 각하」

 

 

 

 

박정희 대통령에게 노동 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전태일의 편지 < 사료로 본 한국사

근대 신재호이홍구 곽금선, 김기성, 김명섭, 김명재, 김명환, 김상훈, 김소영, 김영진, 김헌주, 남기현, 류동연, 박순섭, 박주영, 박한민, 성주현, 송영화, 심철기, 양진아, 이성우, 이양희, 이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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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열사의 희생 이후 노동자들의 불만은 격화되었고 이를 계기로 전국 곳곳에서 노동쟁의가 발생하며 근로환경 개선과 근로기준법 실질적 적용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본격화되었습니다. 그의 외침은 이후 근로기준법 개정과 노동권 강화 논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한국 노동운동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비극을 넘어 법과 현실의 괴리, 노동자의 권리와 보호의 필요성을 사회 전체에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 근로기준법 개정과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움직임에 강력한 동력이 되었습니다.

 

 

전태일 열사
전태일 열사

 

 

 

 

 

 

 

 

 

 

1.4 1975 개정 근로기준법 | 현실에 미치지 못하는 근로기준법

 

1975년 개정된 근로기준법은 1974년 12월 24일 일부 개정되어 1975년 1월 1일부터 시행되었습니다. 이 개정은 1970년 전태일 열사의 분신을 비롯한 노동운동과 사회적 압력에 따른 결과였지만 당시 유신체제 하에서 노동자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주요 내용으로는 근로기준법 적용대상을 기존 16인 이상 사업장에서 10인 이상 사업장으로 단계적으로 확대하여 보다 많은 노동자에게 법 적용이 가능하도록 하였습니다. 또한 여성근로자와 연소자 보호 규정을 강화하고 정당한 이유 없는 해고를 금지하며 해고 예고제를 도입하여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려 하였습니다. 아울러 취업규칙의 게시를 의무화하여 노동자가 근로조건과 규칙을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1970년대까지 근로기준법을 포함한 모든 노동법 관련 사건은 대법원 판례를 합쳐도 한 해에 10건을 넘지 않았고 법 적용과 소송 사례가 매우 적어 실제로는 법률이 제대로 지켜지지 못하는 허술함이 존재하였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1975년 개정은 법적 체계 개선의 의미를 갖지만 법 적용의 실효성을 확보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970년대 다락방 봉제공장 미싱사와 시다(청계천박물관)
1970년대 다락방 봉제공장 미싱사와 시다(청계천박물관)

 

 

 

 

1.5 1987 개정 근로기준법 | 노동3권의 명문화

 

1987년 근로기준법 개정은 단순한 조문 변경이 아니라 당시 한국 사회에서 일어난 정치·노동·사회적 변화가 법률 개정에 반영된 결과였습니다. 1987년 당시 민주화 열기, 대규모 노동자 투쟁, 노사관계 및 노동운동의 활성화 등이 한꺼번에 격발되면서 노동법 체계 전반의 개혁 요구가 급증했습니다. 예컨대 7·8·9월 노동자 대투쟁과 같은 대규모 노사 갈등이 연속된 가운데 근로기준법의 적용 대상이 확대되고 노동3권 보장이 강화되는 법 개정이 이루어졌습니다. 

개정의 구체적 내용으로는 적용 대상 사업장의 고용인원 기준이 하향 조정되어 종전 16인 이상 사업장에서 10인 이상으로, 또 10인 이상 사업장 기준이 5인 이상으로 변경되는 등(최소 인원 기준이 축소) 보다 많은 사업장 근로자가 법 적용을 받도록 조정되었습니다. 또한 노동자의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노동3권)이 법률적 장치로 강화되어 노동조합 활동과 교섭·쟁의권 보장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그 외에도 연장·야간·휴일근로에 대한 가산 수당 규정이 보다 명확해졌고 여성·청년·연소자 근로자의 보호를 위한 조항이 보완되었으며 남녀고용평등 등을 통해 여성 근로자의 지위 향상을 도모하는 제도적 변화도 이루어졌습니다.


그간 '법은 존재하지만 적용이 미흡했다'는 한국 노동법 현실에 중요한 신호를 보냈습니다. 노동자가 조직화되고 요구를 내세우며 법률 개정까지 이끈 점은 그 자체로 의미가 큽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당시 체제·정치구조의 한계, 즉 유신체제 잔영, 적용 대상의 제한, 단체행동권에 대한 여전한 제약 등이 여전히 존재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실제로 노동3권 관련 논의에서는 '형식적 보장'에 머무른다는 비판도 존재합니다. 따라서 1987년 개정은 노동법 적용 범위 확대와 권리 보장의 진전을 의미하지만 '법률 조문만으로 현실이 자동 개선되지는 않는다'는 교훈을 남깁니다.

 

 

1987년 6월 항쟁 (민주화 운동)
1987년 6월 항쟁 (민주화 운동)

 

 

 

 

 

 

 

 

 

1.6 1989 개정 근로기준법 | 주44시간, 근로시간 단축

 

1989년 개정된 근로기준법은 근로조건의 최저기준을 정함으로써 노동자의 기본생활을 보장하고 향상시키는 것을 법의 목적으로 내건 상태에서 실제 적용 범위와 내용이 대폭 개선된 중요한 변화였습니다. 법정 근로시간을 기존 주48시간에서 주44시간으로 단축하고 연장근로 및 휴일근로의 허용 한계를 명확히 했으며 주 1일 유급휴일 보장과 18세 미만 연소자 야간작업 금지 등의 조항을 포함했습니다. 주 1일 이상의 유급휴일 보장 조항이 도입됨으로써 노동자에게 주기적 휴식권을 법률 차원에서 확보하려는 시도를 보였고 18세 미만 연소자의 야간작업 금지 등 청소년 근로자 보호 규정, 여성근로자·연소자 등에 대한 보호 규정이 확대되었습니다.

이 개정은 사회적으로도 의미가 깊었습니다. 1980년대 후반 한국은 민주화 요구가 고조되고 노동자 투쟁과 노사 갈등이 이어지던 시기였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근로기준법이 단순한 선언적 법률에서 벗어나 실질적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입법적 도구로서 기능하기 위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실제 현장에서의 법 적용과 집행은 여전히 허술했습니다. 예컨대, 개정 이후에도 많은 사업장에서 장시간근로가 관행으로 남아 있었고 법령 위반에 대한 제재나 실질적 감독 체계는 미비했습니다. 또한 이 개정 시기는 유신체제의 영향이 남아 노동자·노동조합의 권리 행사 자체에 제한이 존재했던 점도 고려해야 합니다.

 

 

주44시간 TV 뉴스 보도

 

 

 

 

1.7 1997 제정 근로기준법 | 국제적 기준에 맞춘 재제정

 

1997년 3월 13일 제정된 근로기준법은 우리 노동법의 구조적 문제와 국제화·세계화의 요구에 대응하며 근로시간·근로형태·노사관계의 유연화를 중심으로 한 대대적인 개정을 담고 있습니다. 이 개정은 단순히 조문을 손본 것이 아니라 1991년 국제노동기구(ILO) 가입과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으로 인해 국제기준에 근로관계를 맞춰야 했던 압력과 산업구조 변화와 고용형태 다양화에 따라 기업활동의 유연성이 높아져야 한다는 경영계의 요구가 결합된 결과물이었습니다.

주요 개정 내용으로 탄력적 근로시간제도와 선택적 근로시간제도가 도입되어 근로시간을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 노사 간 약정과 운영 방식으로 조정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노동관계법 체계가 정비되어 노동자의 기본권 보장과 동시에 노동시장 유연화를 위한 기반이 마련되었습니다.  ILO 가입 및 글로벌 통상체제에 편입되어야 했던 한국은 근로조건을 국제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했고 이를 위해 노동법을 유연하게 운영할 수 있는 구조로 개정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처럼 1997년 근로기준법 개정은 그간 산업화 초기부터 유지되어 온 경직적이고 ‘보호 중심’의 근로조건 체계에서 벗어나 고용·노사·근로형태가 변화한 현실을 반영한 ‘유연성과 기반정비’의 시대적인 전환점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비판도 존재합니다. 개정 이후에도 노동시간이 다시 증가했다는 통계가 있으며 실제 제도의 남용 혹은 감독 미비로 인해 “법은 바뀌었지만 실제 현장은 바뀌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1997년 OECD 가입 신문기사
1997년 OECD 가입 신문기사

 

 

 

 

 

 

 

 

 

1.8 2003 개정 근로기준법 | 주40시간, 주5일제의 시작

 

2003년 개정된 근로기준법은 '근로조건의 최저기준을 정함으로써 근로자의 기본생활을 보장하고 향상시킨다'는 법 목적 아래 법정근로시간을 주44시간에서 주40시간으로 재단축하고 동시에 주 일 근무제 도입을 위한 법적 기반을 마련하였습니다. 또한 월차 유급휴가 제도가 폐지되고 연차 유급휴가 제도로 변경되어 이전보다 명확한 휴가를 보장하였고 유급 생리휴가 조항이 변경되어 '유급'에서 '무급'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아울러 연장·야간·휴일근로에 대한 제도적 규정이 정비됨으로써 근로시간 단축과 더불어 근로 형태의 유연성과 보호의 조화를 꾀하려는 움직임이 반영되었습니다.


이 개정은 여러 측면에서 의미 있는 전환점을 마련했습니다. 이전까지 장시간 노동이 관행이었던 현실에서 주40시간의 법제화는 근로자 건강과 여가 생활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의 결과였습니다. 그리고 OECD, OLO 등 국제기구의 요구와 국제 흐름을 국내 법제에 반영한 사례로도 의미가 있으며 노동자 보호와 기업 경쟁력 간의 균형을 꾀한 제도적 설계이기도 했습니다. 2003년 개정 근로기준법은 근로자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노동시간을 합리화하며, 휴식권과 여가권을 강화한 법적 전환점으로 평가됩니다.

 

 

주5일제 국회 통과 보도

 

 

 

 

 

1.9 2018 개정 근로기준법 | 주52시간 제한, 직장 내 괴롭힘 금지

 

2018년 개정 근로기준법은 근로시간과 휴식권에 대한 국민적·사회적 요구가 매우 커진 시점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워라밸’을 실현하고자 하는 정부와 사회의 의지가 강하게 표명되어 법률 차원에서도 근로자의 삶의 질 개선을 위한 제도 정비가 이뤄졌습니다. 구체적으로는 법정근로시간이 주40시간을 기준으로 재확인되었고 연장근로 및 휴일근로 등 포함한 1주 최대 근로시간이 주52시간으로 한정되기 시작했습니다. 아울러 연차유급휴가 제도가 개선되었고 기존에 민간 기업에는 적용되지 않았던 관공서 공휴일이 민간기업에도 적용되도록 확대되는 등 휴식권 보장이 강화되었습니다. 또한 장시간 근로의 주요 원인으로 꼽혔던 근로시간 특례업종이 축소되었고 직장 내 괴롭힘 금지·성희롱 예방의무 강화 등 근로환경 전반을 바꾸려는 조치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2018년 근로기준법 개정은 '일하고 나서 삶이 있는 노동'을 향한 법률적 선언이었으며 법이 근로자의 시간과 공간, 환경까지 배려하기 시작했다는 의미에서 매우 중요한 변화였습니다.

 

 

근로기준법 준수 시위 현장

 

 

 

 

구분 개정일 법률번호 구분 개정일 법률번호
근로기준법 제정 1953.05.10 제286호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정 2006.12.21 제8074호
제1차 개정 1961.12.04 제1791호 제9차 개정 2007.01.26 제8293호
제2차 개정 1974.12.24 제2708호 제10차 개정 2007.04.11 제8372호
제3차 개정 1980.12.31 제3439호 제11차 개정 2007.05.17 제8429호
정부조직법 개정 1981.04.08 제3422호 제12차 개정 2007.07.27 제8516호
사법경찰관의 직무를 행할 자와 그 직무범위에 관한 법률 개정 1981.12.31 제3492호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 2007.12.21 제8781호
최저임금법 제정 1986.12.31 제3927호 제13차 개정 2008.03.21 제8960호
제4차 개정 1987.11.28 제4058호 제14차 개정 2008.03.28 제8988호
제5차 개정 1989.03.29 제4099호 15차 개정 2009.05.21 제9699호
산업안전보건법 제정 1990.01.13 제4224호 16차 개정 2010.05.25 제10339호
제6차 개정 1996.12.31 제5245호 17차 개정 2012.02.01 제11270호
근로기준법 폐지 1997.03.13 제5308호 18차 개정 2014.01.28 제12352호
근로기준법 제정(재) 1997.03.13 제5309호 19차 개정 2014.03.24 제12527호
제1차 개정 1997.12.24 제5473호 20차 개정 2017.11.28 제15108호
제2차 개정 1999.02.08 제5885호 21차 개정 2018.03.20 제15513호
제4차 개정 2003.09.15 제7008호 22차 개정 2019.01.15 제16270호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제정 2005.12.31 제7849호 23차 개정 2021.03.23 제17911호
제6차 개정 2005.03.31 제7465호 24차 개정 2021.04.13 제18130호
제7차 개정 2006.12.21 제8072호 25차 개정 2024.10.15 제20520호
제8차 개정 2006.12.21 제8073호 28차 개정 2025.10.01 제21065호

[근로기준법 제개정 연표]

 

 

 

 

 

 

 

 

 

 

 

맺음말

 

근로기준법은 단순한 법 조항의 집합이 아니라 대한민국 노동사회의 성장과 함께 진화해온 ‘노동권의 역사서’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시대의 경제 구조와 사회 의식 그리고 수많은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담겨 있기에 오늘 우리가 누리는 노동 환경의 근간이 되고 우리의 삶의 모습과 사회의 모습을 규정하였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근로기준법의 제정과 개정 과정을 중심으로 그 역사적 흐름을 살펴보았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앞으로 변화가 예상되는 노동정책과 관련해 2026년 개정될 것으로 예측되는 노동절 명칭 변경, 법정 근로시간 단축 및 주 4.5일제 그리고 5인 미만 사업장의 근로기준법 예외 적용 폐지 등 우리의 일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주요 이슈들을 중심으로 더 깊이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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